하지(夏至)
태양이 제 이마를 세상의 정수리에 대고
가장 뜨거운 사랑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하늘은 제 빛을 다 쓰지 못해 안달이 난 듯
그림자를 발밑으로 숨기고 세상을 온통 금빛으로 태웁니다.
하지, 멈추지 않는 초록의 질주입니다.
입춘에 틔운 싹이 입하를 지나 숨 가쁘게 달려와
생의 가장 눈부신 정점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
논둑의 물은 하늘의 빛을 담아 끓어오르고
숲은 더 짙어질 수 없을 만큼 검푸른 바다가 됩니다.
지치지 않는 빛은 저녁을 멀리 밀어내어
그리운 사람에게 돌아가는 길을 자꾸만 늦춰 놓습니다.
해는 지지 않고 지평선 끝에 걸려 서성이고
그 넉넉한 볕 아래서
남은 생의 서늘한 구석들을 속속들이 말려봅니다.
공평하게 쏟아지는 이 눈부신 축복은
이제 곧 찾아올 장마와 태풍을 견디라는 응원이며,
뜨겁게 달궈진 가슴으로만
가장 달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무언의 가르침입니다.
세상의 어둠이 틈탈 겨를조차 주지 않을 만큼
가장 높고 찬란한 빛으로
누군가의 길을 오래도록 비춰주는 여름의 심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