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내리는 날

하늘은 오래 묻어둔 말을 흰 숨으로 토해내고

거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히 젖어든다

누군가는 첫눈 속에서 첫사랑을 다시 만난다

차갑던 손끝에 남아 있던 끝내 놓지 못한 온기,

이름도 부르지 못한 채 눈발 속으로 흩어지던 얼굴을

누군가는 같은 눈 아래서 어둔 밤 피난길을 걷는다

등 뒤로 무너지던 집과 앞을 알 수 없던 길 사이에서

젖은 신발 속으로 스며들던 서러운 시간을 다시 밟으며

첫사랑은 눈처럼 가볍게 내려 가슴에 오래 남고

피난의 기억은 눈처럼 쌓여 끝내 녹지 않는다

첫눈은 가장 따뜻한 이름으로,

가장 차가운 기억으로 내리고

아무도 모르게 한 시절이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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